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세번째 만남입니다~
예전엔 서원 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400m 전 주차장이 따로 만들어져 있네요.
정겨운 비포장길로~
문화해설 부탁 드리니 점심시간이지만 간단하게라도 해 주신다며 나서시는 해설사님~
서원 들어가는 입구
귀한 장수매 열매가 보이네요.
뒤돌아 병산을 바라보며~
복례문
만대루
해설사님의 설명을 잘 듣고 있는 친구들~
만대루
병산서원
입교당 현판이 나란히~
병산서원 입교당
전형적인 5칸의 강당 구성으로 가운데 큰 마루와 양쪽 끝에 온돌방이 배치되었다.
동쪽 끝 칸은 원장실로 ' 명성재' 라 부르고
서쪽 끝 칸은 부원장이나 교수가 머무는 방으로 '경의재' 라 부른다,
유생들이 한 달 동안 자습한 내용을 구술로 시험 보는 강회를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장판각
장판각은 책을 찍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
지금은 목판을 박물관으로 옮기고 비어 있다고 합니다.
300년이 훨씬 넘은 배롱나무.
신문
신성한 사당으로 들어가는 영혼의 문.
가운데 문은 혼령과 제물이 드나드는 문.
오른쪽 문은 제관과 유생들이 드나들고
왼쪽문은 가장 높은 분과 낮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전사청
제다 때 제물을 장만하고 보관하는 곳.
제사하기 전날 고직사에서 준비한 재료를 법식에 맞게 가공하고 보관.
신성한 제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에 담을 둘렀다.
전사청 대문에서 바라 본 입교당 뒷편.
입교당 뒷편에서 바라 본 만대루~
병산과 만대루
명성재 현판
입교당 현판
경의재 현판
입교당에서 내려다 본 풍경
주사
서원의 관리인들이 사는 곳.
사당을 관리하는 묘지기, 유사를 보좌하는 장무, 학생들의 식사를 마련하는 정지기등
노비들이 거주 하던 곳.
달팽이 뒷간
만대루
두보의 백제성루 라는 시에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 하니' 라는 시어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8개의 기둥
7칸의 긴 누마루 건물로 낙동강의 하얀 백사장과 병산 풍경을
7폭 병풍에 담아내는 병산서원 최고의 건물.
언제 봐도 멋진 만대루 입니다.
만대루 마루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네요.
지난 번에 왔을 땐 올라가서 멋진 사진도 담고 했었는데....
아쉽지만 욕심이겠지요.
귀한 문화자산을 보호해야 하는 것도 우리들의 의무인것~~~
서원 마당에 매화 꽃 필때 정말 아름다웠었는데
매실도 탱글 탱글 예쁘네요.
서원 한번 더 담고
만대루도 더 담고
그래도 아쉬움에 또 담게 되네요.
돌아서 나오며~
복례문을 나서며~
2005년 부시 대통령 내외 방문기념 식수
병산 아래 백사장으로 내려서서~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로서
서애 류성룡(1542~1607)선생과 그의 제자이며 셋째 아들 수암 류진(1582~1635)공을 배향한 서원이다.
이곳은 서애 선생께서 31세 때인 1575년에
풍산 상리에 있던 풍악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와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1607년 선생이 돌아가신 후 묘우를 짓고 선생의 위판을 모셨으며
매년 봄. 가을 향사를 받들면서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철종 14년 (1863)에 병산서원으로 사액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병산서원은 낙동강의 은빛 백사장과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병풍을 둘러친 듯한 '병산'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할 만큼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누각 건물인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은
병산의 자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유생들이 교육을 받던 강당인 입교당에서는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자연 친화적이고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는 곳으로
우리 민족의 절제된 마음과 자연을 지켜가고자 하는 민족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선비의 절제된 마음을 담아 낸 인공적인 건축물과 하나되어 펼쳐 내는 장엄함은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한옥의 완숙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주사 앞에 달팽이 모양을 한 하늘 열린 통시(화장실)는 또 다른 볼거리로 재미를 준다.
팜플릿 펌글.
2018. 6. 10. 일요일.